빨간 머리 앤.. 필사 연습

2020. 12. 10. 13:23카테고리 없음

 

빨간머리 앤의 시작부분입니다. 정말 이 부분을 읽으면서, '와 , 저자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번역가도 마찬가지고요.

레이첼 리니드 부인은 에이번리 마을의 큰길이 급경사를 타고 작은 골짜기로 내려가는 곳에 살고 있었다. 주위엔 오리나무와 금낭화가 늘어서 있으며 저 멀리 커스버트네 숲에서 흘러나온 시냇물이 이 길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 시냇물은 상류에서는 은밀한 비밀의 샘과 폭포를 이루며 미로처럼 꾸불꾸불 세차게 흐르지만, 린드 부인네 골짜기에 접어들 무렵에는 조용하고 잔잔하게 흐르는 작은 개울이 되었다. 제 아무리 시냇물이라도 린드 부인의 문간을 지나쳐 흘러가려면 예의와 품위를 갖춰야 한다는 걸 아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린드 부인이 창가에 앉아, 이를테면 시냇가에서 올라오는 아이들이라든지, 집 앞을 지나쳐가는 모든 걸 예리한 눈길로 바라보며, 혹시라도 이상하거나 눈에 거슬리는 게 있으면 그 까닭을 알아낼 때까지 집요하게 파고들 거란 사실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기 일을 내팽개치면서까지 이웃 일에 참견하는 사람은 에이번리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에도 차고 넘쳤다. 그러나 린드 부인은 자기 일도 충실히 하면서 남의 일까지 신경 쓸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녀는 알뜰한 살림꾼이었다. 자신이 맡은 일은 언제나 깔끔하게 처리했으며, 자선 재봉회를 운영했고 주일학교를 돕는가 하면, 교회 봉사회와 해외 선교 후원회에서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린드 부인은 몇 시간이나 부엌 창가에 앉아 무명실로 침대보를 떴고, 에이번리의 부인들은 경외감에 찬 목소리로 린드 부인이 침대보를 열여섯 장이나 떴다고 감탄하곤 했다. 그리고 이렇게 바느질을 하면서 분지를 가로질러 가파른 붉은 언덕 위로 구불구불 이어진 큰길을 예리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에이번리 마을은 세인트로렌스 만으로 돌출한 조그만 삼각형 모양의 반도에 자리 잡고 있어서 양면으로 바다와 접하고 있었기에 마을을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언덕길을 지나가야 했다. 때문에 그 누구도 보이지 않게 지켜보고 있는 린드 부인의 시선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